요즘 영국으로의 연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마도 visa법 강화로 인해 아시아인에 대한 규제가 대폭 강화되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지내는 동안만도 3번이나 바뀌었으니 말이다.
이곳에 와서 만나 본 한국 학생만도 백여명...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나는 그 학생들과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고민을 들어주기도 했었다. 그 애들은 나를 어려워 하면서도 어떨 때는 오히려 그 아이들이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었다. 나이가 많은 막내 삼촌뻘 이나 왕형님 정도로 그 애들은 나를 대했기 때문에 일 것이다.
혼자 먼 타지에 와 있는 그들의 속사정...그리고 외국에서 그들의 생활...결코 부모들이 바라 듯 좋지만은 않다...
'2'
한국 학벌로는 경쟁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영국에 와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이 범위에 해당될 듯 하다.
이제는 필수사항이 되어버린 대학원.
너나 할 것 없이 대학은 기본으로 들어가는 현사회에서 더이상 취직 가능한 급행열차로써의 가치를 상실해버린 한국대학 졸업장은 이제 더 이상 한국 대학생들에게 희망이 아닌 그저 종이쪼가리로 치부된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대학원 또는 외국 대학 졸업장.
이미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에 온 학생도 있었다. 그의 나이 30.
썩 잘하는 영어는 아닐지라도 소위 말하는 누구나 한번쯤 나갔다 왔을 외국물을 먹기 위해 영국으로 온 친구다.
이렇듯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그 곳이 한국이든 영국이든) 열심히 공부하고 터를 닦으려는 학생들이 바로 이 숫자 '2'에 해당된다고 본다.
그러나, 그나마도 visa법 강화로 이곳에서 대학을 마친다해도 2년짜리 work permit을 받는 것이 고작..그나마 잘 버티지 못하면 연장도 힘들어졌다.
겨우겨우 영국 회사에 들어갔다하더라도 현지인처럼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그나마 중간관리급으로 올라가기도 힘든 상황..(중간관리자는 주로 인도 사람들이 포진)
그래도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힘들어도 꼭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열심을 다해 공부하고 있다.
'4'
영국이란 곳에 왔으니 뭐라도 하나 성취하고 가야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control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의 한국 학생들...
이곳에 와 있는 한국학생들의 평균 나이는 22~23세...
유럽에서 온 학생들에 비해 많거나 적은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유의지에 대한 control이 유럽학생들에 비해 익숙치 못하다. 하기사 태어나서 무엇인가 배움이란 것을 시작할 때 부터 한국학생들은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주는대로 받아 먹는 교육에 익숙해있던터이니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힘들 수 밖에...
공부는 하고 있으나 뚜렷한 목표의식이 점점 희석되어 간다. 그러면서도 뭔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다보니 공부도 노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생활 속에 빠져든다. 목표없이 영국 유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는 맘 잡고 공부하고 또 하루는 그저 대책없이 놀고,,,후회하고 다시 맘잡고 공부하고 다음 날 또 대책없이 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미뤄뒀던 벼락치기 공부를 한다.
사실 외국에 한번이라도 나와 본 사람들은 흔히 겪는 경험이 한 가지 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한마디씩 한다.
"와, 영어 잘하겠네. 영어로 얘기해봐..."
이거 보통 난감한게 아니다. 영어로 얘기하자니 뻘쭘하고...안하자니 공부 헛했다는 소리 들을까봐 겁나고...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레벨이라도 높이고 IELTS점수라도 받아볼 요량으로 공부한다. (영국은 IELTS 한번 보는데 약 £400~500 정도...이야기 들었는데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대략...) 물론 이곳에서 대학 진학을 할지 안할지 결정도 못한채 말이다.
이렇듯 절반에 가까운 한국의 학생들이 갈팡질팡하며 영국 연수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다.
'3'
내 세상.
그 누구도 뭐라하는 사람 한명 없는 이곳에서 그들은 매우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학교는 나오되 그저 시간 떼우기 식이요(출석 사항이 저조하면 강제 추방 당하니까..) 저녁이 되면 클럽과 클럽을 오가며 밤 세워 놀고...돈이라도 떨어지면 누구 한 사람 집에 모여 밤새 떠들고 논다. 남자건 여자건...모이는 곳이 남자애 집이건 여자애 집이건 상관없다. 장소만 주어진다면 논다.
영국 집은 방음이 잘 안된다. 바로 윗층에서 소근거리는 소리가 아랫층 방에서 들릴 정도인 집도 있다(그러고보면 한국 집은 방음 정말 잘 된다).
서로 claim을 걸며 싸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러다가 함께 어울리는 case가 더 많다.
pub이나 club에서 사먹는 맥주보다 mart에서 사먹는 맥주가 훨씬 싸다. off licence에서 사면 더 싸다. 세금이 안붙는 제품이니까...남자애들은 맥주, 여자애들은 와인을 한병씩 끼고 밤새 논다.
아마 한국에서 이런 모습을 나이 지긋한 분들이 본다면 기절할 것이다. 과년한 남녀가 한 방에서 그것도 술에 얼근하게 취해서 밤을 샌다는 것...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행동이 별스럽지 않으며 그저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처음엔 신이나서...시간이 지나면 외롭고 지루해서...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일이 갑갑해서...그렇게 그들은 오늘은 무엇을 하며 놀까..하는 고민에 빠져있다.
그리고 '1'
무조건 좋다...그리고 무조건 싫다...
영국에 있다보니 흔치 않지만 이 '1'에 해당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다.
이유가 없다. 영국이 무조건 좋다.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싫다. 자유롭게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그저 내가 움직인 만큼 받고 살 수 있는 나라가 영국이기 때문이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그만큼 안쓰면 되는 곳이 영국이기 때문이란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직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해보지 않고 바로 영국 사회에 물들어 있는 사람이다. 한국사회에 대해서 들어보기만 하고 선배들의 모습을 보기만 했던 그에게 한국사회는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곳으로 각인되어 있다가 영국에서 일을 해보니 직접 비교는 안되지만 자신이 각인시켜놓은 한국사회와 비교가 되면서 영국이 무조건 좋아지게 되버린 셈이다.
그에게는 한국에 대한 어떠한 좋은 이야기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이제 그는 영국인이 되기 위해 한국은 포기한 사람이기 때문에...
무조건 싫다. 영국이란 나라...
흔치 않지만 체질적으로 영국이 안맞는 case인 듯 하다.
음악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겉보기엔 아주 잘 지내는 듯 했다. 어느 날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한다.
"이곳이 싫어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날씨도 맘에 안들어요. 먹는 것도 맘에 안들어요. 영어 소리만 들으면 귀를 막아버리고 싶어요. 외국사람 보면 눈도 마주치기 싫어요. 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자꾸 여기서 대학나오라고...들어오지 말고...여기서 졸업하고 오라고...난 우리나라가 좋은데..."
한국을 벗어나 타국 자체가 맞지 않는 사람이 있고, 특정 나라에 대해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듯 하다.
위의 case는 선자일까 후자일까...
사실 한국을 청산하고 영국에 와서 다시 시작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런던을 오가며 만나본 몇몇 선배들이나 이곳에서 만나 영주권을 바라보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소위 대기업 관리자, 중소기업 사장, 변호사...그러한 신분의 사람들이 영국에 와서 하루아침에 청소부가 되고 택시드라이버가 되고...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식당을 차리고...
영국에서 성공하고 있는 상위 몇 %의 한국인(한국인 사회에서 말이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route을 밟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라고 한 선배는 얘기한다.
그나마 이곳에서 버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오직 아이들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 흔히 애들 교육 때문에 외국에 나가서 산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그닥 피부에 와 닿지않는 머나먼 이야기로 들렸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분들의 생활을 보면서, 눈으로 보는 그분들의 삶은 정말로 아이들이 없었다면 진작에 한국을 되돌아가기에 충분했을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형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읽다보면 마치 영국을 무슨 몹쓸 나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 같아요...
나는 그저 웃음으로 대답했다.
사실 인터넷을 뒤져서 외국생활담에 대한 글을 읽어보면 전부 좋은 이야기들만 가득하다. 하기사 나이 많은 양반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case는 거의 없고 학생들이 주로 글을 쓰니 그럴수도 있겠지만 본인들이 힘들고 어려운 것을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보니 많은 이들이 핑크빛 꿈만을 안고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지도 모르겠다.
힘든 상황도 있을 꺼라는 것을 추측하면서도 핑크빛 꿈에 파묻혀 버린채 말이다.
나는 이미 넘쳐 흐르는 좋은 이야기를 하나 더 올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짧은 기간이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문화 속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조금의 준비를 하길 원할 뿐이다.
나 또한 핑크빛 꿈을 꾸며 이곳에 왔지만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이곳도 한국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곳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 순간부터 나의 한국에 대한 애착이 점점 더 커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오기 전엔 그저 살기 위해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살아왔던 한국생활을...이제 되돌아가면 감사한 마음으로 이전 보다 더 즐겁게 살아갈 마음이 생겼다.
또한 먼 미래의 고민이 한가지 생겼다.
만약 내 아이가 외국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면...나는 뭐라고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이제 내 와이프가 내년이면 졸업한다. 졸업하면 영국 뜰꺼다. 무려 8년을 기다렸다. 호주나 카나다로 갈꺼다. 이곳에서는 안살꺼야. 식당도 정리할꺼야. 영주권? 그게 무슨 큰 대수라고...왜 한국으로 안돌아가냐고? 물론 한국으로 가고 싶다. 하지만 영국에서 8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주위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보겠니...마치 실패해서 되돌아 온 사람처럼 볼꺼 아니니...너무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들의 시선을 받아낼 자신이 이젠 없다. 애들 교육문제도 있고...그래서 이곳보다 좀 더 한국인이 살기 쉬운 호주나 카나다로 가려는 것이다..."
청소와 잡일을 하면서 6년만에 한인식당을 차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며 영주권을 바라보던 한 선배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