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가졌었으니까...
한국에서 외국인을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외국인 친구 한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대부분은 할 것이다. 그래서 혹여 주변에 외국인이 있으면 친해보려 하는 노력도 해 보았을테고...
그러한 마음을 지닌채 영국인란 땅에 왔으니 영국인 친구 한명쯤 사귀는것이 얼마나 그리웠겠는가...
그.러.나...
막상 영국땅에 와보면 영국인을 사귀기란 하늘의 별을 따오는 것이 더 쉽고, 모세가 다시 홍해 바다를 가르는 것이 더 쉬워 보일 것이다.
첫째, conversation이 안되니 영국인에게 쉽게 다가가지도 않고 어쩌다가 다가갔다고 해도 그들과 그리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껏해봤자 학교에 다니면서 만나는 선생이 영국인 전부일 수도 있다.
차라리 선생들은 학생 수준에 맞춰서 얘기를 해주기 때문에 어쩌면 그들은 학생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겠지만, 일반 영국인들은 학생이라고 해서 말을 천천히 하거나 그들이 말하는 것을 되새겨서 알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의사 소통이 안되면 그냥 그것으로 끝내버린다.
현실이 그러다보니 사귀는 외국인이라고는 비슷한 실력의 같은 클라스 다른 나라 사람이다. 맨난 하는 얘기 똑같고 반복되는 일상...
어쩌다가 실력 좋은 친구를 만나면 이게 또 서로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그러다보니 늘 비슷비슷한 친구들끼리 만나거나 그것이 힘들거나 귀찮거나 어려워지면 결국엔 같은 민족의 친구를 찾게 된다.
영국 현지 친구를 사귀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아무리 외국인이라 해도 같은 클라스에 비슷비슷한 실력과 발음을 들어서는 도저히 영국인들과의 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학교에서 어느 정도 적응되기 시작하면서 내가 찾았던 곳은 nursing home...
그나마 할아버지, 할머니 발음은 듣기 편하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그 곳...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영어가 귀에 좀 익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은 학교에서 선생이 하는 말과는 전혀 다른 종족의 언어였다.
선생들은 또박 또박 알아듣기 쉽게 천천히 얘기했기 때문이란걸 그때서야 알았다.
빠른 스피드, 뭉개지는 발음, 알아듣기 힘든 억센 발음의 북쪽 지역에서 온 할아버지...저마다 다른 언어를 쓰는 듯 했다.
일을 시키는 매니저의 총알처럼 빠르면서 투박한 발음의 말...후에 알았지만 아일랜드 출신이란다...
결국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둘째, 같은 생각, 공통된 관심사가 없다면 영국인은 자기 울타리 안에 들여놓지 않는다.
시청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대상 교육, 국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공부, nursing home...영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다녔다.
그러나 영국인과 함께 하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그러다가 선택한 것이 영국교회...
처음 영국인교회에 무작정 찾아간 나는 유일한 동양인이기에 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뿐...
그들은 첫 인사만 하고는 관심 밖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한국교회처럼 새로온 사람에 대한 환영도, 반갑게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예배가 끝난 후 자기들끼리 떠들고 가버렸다. 그렇게 2주...어쩔 수 없이 한인교회로 발걸음 옮기던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그 교회의 장로님이라고 했다.
본인이 하는 성경공부에 올 생각이 있냐고 물어본다. 한국인도 있단다. 그러고마 했다. pick up해 주겠다. 감사하게도...
그렇게 만난 그 장로님은 후에 얘기하길...
우리에게 새로운 만남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 사람을 내 공간 안으로 들여오기 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도 반갑게 맞이하고 인사할 수 있지만 돌아서면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것이 영국인이며 영국인의 삶이다.
아마도 우리 교회에서 당신이 함께 할 수 있으려면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영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울타리이다...라고...(이 장로님 나의 영어 실력에 맞춰 또박또박, 천천히 그리고 쉬운 단어로 친절하게 잘 얘기를 해줬다.)
한번은 초대를 받아 파티에 간 적이 있다. 많은 영국인들...우와 내가 언제 이들과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을까 싶어 맥주 한잔 들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이야기 하고 다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자신들과 친한 사람들끼리 뭉치기 시작했고 내가 낄 수 있는 그룹은 없었다. 거참 뻘쭘했다. 그때 한 그룹에서 나를 불러줬지만 이후 그들과의 교류는 더 이상 없었다. 그저 파티장에서 만났던 한 동양인으로 그들은 기억하고 말 뿐이다.
영국인은 초대하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듯 하다. 내 울타리 (영국인들은 Garden을 가지고 있으며, London같은 도시에 살 경우 Garden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공동 Garden을 만들어 'Private Garden'으로 사용한다) 안에 너를 들였다...란 의미로 그것은 이제 너를 받아들인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일까...이들의 저녁 시간은 언제나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한다. 생일, 기념일, 국경일, 축제일...언제나 집에서 모든 것을 한다.
업무차 런던에 갔다가 들은 얘기다.
가끔 영국 회사도 한국처럼 회식이란 것을 하기도 한단다. 우리나라처럼 달려라 마셔라 이런 분위기는 아닌 듯...그저 동료 직원끼리 간단하게 pub에 가서 맥주 한잔 시켜놓고 이야기 하는 정도...그러면서도 저녁식사는 꼭 집에 가서 먹는단다. 자기 울타리로 들어가는 셈이다.
첫 만남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어색해하고 뻘쭘해하지만 금방 친해진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첫 만남은 마치 10년만에 만난 사람처럼 반가워하지만 만남이 끝나면 언제 만났냐는 듯 뒤돌아서 가버린다.
아직 너와 나의 공통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내 울타리에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