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과 리조트를 가지고 있는 그룹에서 통합 프로젝트가 발주 되었다.
예산은 약 2억여원.
세일즈리포트에 의하면 4개 업체가 경쟁을 하고 마지막으로 우리 회사에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RFP를 받아보니 제출일은 이미 지났고 PT일은 코 앞이었다.
제안 PM으로써 당연히 이상한 일정이 아닐 수 없었다.
영업을 통해 알아보니 우리 회사 얘기를 뒤늦게 듣고 제안참여를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고객 반응도 상당히 호의적이었단다.
그래서, 특별히(?) 제안제출과 발표일까지 늦춰 주기로 했단다.
그래도 이상했다.
아무리 호의적이라 하더라도 이미 다른 업체의 제안서를 받고 PT일정까지 확정된 상황에서 타업체에 비해 일주일가량 이란 시간을 봐주면서까지 제안을 받겠다니...
TFT를 구성하고 RFP Review를 진행했다.
account manager를 통해 제안요청 내용을 상세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고객관리, 컨텐츠관리 부터 시작하여 예약, 채용, 온라인 브랜드 전략 요청까지 끝도 없이 나왔다.
용어만 봤을 때는 뭐 그정도는 당연히 나올 만한 부분 아니겠는가 싶었다.
그런데 의문 사항이 들었다.
발주사는 여러 호텔, 리조트를 운영하는 기업이라는 점이었다.
호텔과 리조트라는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용어로만 해석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account manager와 2시간여 Review를 통해 더이상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없는 듯 했다.
그래서, 다음 날로 고객 미팅을 요청하였다(밤 10시 30분 경에...ㅡㅡ;;;).
다음 날, 고객과의 미팅이 진행되었다.
지난 저녁 의문스러웠던 항목들을 꼼꼼히 질의를 하였다.
고객담당자는 이상하리만큼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던 중...
경쟁업체 정보가 흘러나왔다.
몇개 업체가 drop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개인적으로는 우리 회사와 일을 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해왔다.
아무리 호감이 있더라도 제안 초도 미팅 때 고객이 쉽게 얘기할 부분은 아닌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drop 업체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었다.
이미 4개 선 경쟁업체 중 3개 업체가 drop을 하였고, 국내 에이전시에서는 레퍼런스가 있는 회사들이었다.(남은 하나 업체는 회의 종말 쯤 얼떨결에 고객이 입에서 튀어 나와 알 수 있었다.)
본사 복귀 후 보고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제안작업은 가능함. 그러나 수주 하더라도 리스크가 많은 프로젝트 임. 진행여부 결정 재확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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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호텔의 경우 예약시스템 (Hotel Reservation System) 구축만으로도 하나의 별도 사업으로 뺄 만큼 큰 프로젝트이다.
거기에, 여러 계열 호텔과 리조트를 통합 관리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사항까지 곁들여지면서, DB통합 뿐 아니라 전체 단일예약시스템까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실시간 예약은 아니라 하더라도 호텔이나 리조트의 front-desk 시스템과의 조우를 고려한다면 결코 만만한 사업은 아니었다.
또한, 패키지 쿠폰 관리 시스템까지 덧붙어 있다면 정산관리시스템까지 고려를 해야 한다.
이건 분명 SI성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이러한 사항들을 염두하지 않고 업체를 끌어들이기 위해 어렵지 않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고객의 이야기에 현혹되어, 제안에 참여하고 수주를 하게 된다면, 적은 예산에 수없이 많은 요구사항을 수행하게 되는 적자 프로젝트가 될 뿐이다.
고객은 분명 불안해 하고 있었을 것이다. 4개 업체 중 이미 3개 업체(그것도 내놓으라 하는 업체들만)가 drop을 해버린 상황이니 중견업체를 잡기 위해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모든 정보와 카드를 미리 꺼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업체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조건 사업을 수주하겠다고 덤비지는 않는다.
사전에 경쟁업체들이 drop을 했다는 정보를 받았다면,
고객이 원하는 바가 예산에 비해 많은 요청사항이 있었고, 그 항목들의 성격을 분명히 알았다면,
밤 늦게까지 review하고 고객을 찾아가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죄송하지만 시간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drop을 해야 한다는 메일을 전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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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업체가 drop을 할 때는 분명한 그 이유가 있다.
제안을 쓰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 전에 사업의 성격을 정확히 판단하여 먹을 떡인지 아닌 지를 판단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