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영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다보니 영국인이 아닌 다른 외국인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유럽권, 아랍권 그리고 남미...
대부분은 개방적인 문화 탓인지 쉽게 친해지고 쿨하게 헤어진다.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가끔은 힘들 때가 많다. 그것은 바로 발음 문제.
정통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으로써는 외국인 대 외국인의 대화는 참으로 힘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발음이 틀려서 알아 듣지 못했다는 불평을 토로 한다. 내가 듣기엔 너나 나나 별반 차이 없는데도 말이다...풋
나름 수업 시간 선생님들에게 발음은 좋다고 칭찬 받는 나인데 말이다 ㅎㅎㅎ
영어 초보자와 초보자가 대화를 하면 아주 쉽다. 서로 알고 있는 단어를 총 동원하여 나름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뤄낸다.
적당히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서로 못 알아들어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영국인과 외국인이 만나면 커뮤니케이션은 아주 편해진다. 외국인이 말하는 영어를 영국인은 잘 받아들이고 외국인이 알아 듣기 편한 말로 응대를 해준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종종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 아무것도 모르는 고객과 수행자가 만나면 별로 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타협하고 논의하면 일을 진행한다. 때로는 동지가 되어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도 한다.
반면 둘 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사람끼리 만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자신의 경험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 사람의 의견은 충돌된다. 때로는 고집으로 변모되기도 하고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으며 누군가 중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까지 가기도 한다.
그러나 상당한 경력의 소유자와 초보자가 만나면 일은 쉽다. 경력자는 초보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일을 진행한다. 초보자의 고집을 능수능란하게 받아 넘기기 때문에 싸움이 날 경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의 웹사이트 역사가 어느 덧 10년이 넘어갔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전문가며 모두가 경력자가 되어 버렸다. 고객이나 수행자나 이제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의 의견을 취합하기 어렵다.
이곳에서 첫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내심 속으로 불안불안 했다. 과연 한국식 프레젠테이션이 먹힐까? 이들이 알고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이들의 생각이 한국 고객의 생각과 어느정도나 다를까?
그러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나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들의 질문은 간단했다.
'당신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의 매출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습니까? 당신은 이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 입니다. 나는 장사꾼입니다. 나는 매출 향상에 관심이 있고 나는 당신이 나의 관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당신의 제안은 영국내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는 것이라 확실합니다. 그것이 영국에서 가능한지 아닌지는 당신이 이미 충분히 고려해서 제안을 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성공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의 질문은 한국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받아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이들은 나를 이 분야의 master로 본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이 분야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해도 나만큼은 알지 못하니 내가 당신을 선택하는 순간 당신은 우리의 매출 향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줘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이후 몇 번의 미팅을 하면서 그들은 내 의견에 토를 달거나 상반된 의견을 고집 부리지 않았다. 다만 영국시장에 대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 듯한 표정일 때만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지난 주 나는 고객사 사장님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물어보았다.
'왜 당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습니까?'
사장은 대답한다.
'나는 주판을 튕기는 사람이지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심없다. 나는 시스템을 통해 돈을 벌기 원한다. 나의 관심은 어떻게 프로모션하고 어떻게해야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다. 물론 나도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이 그린 전체 그림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나는 입을 다물 것이다. 그것은 나의 생각일 뿐이며 내가 알고 있는 극히 적은 지식일 뿐이지, 이 프로젝트를 리드해가고 있는 당신의 플랜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방해가 되고 싶지 않으며 당신의 그림에 붓질을 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master는 당신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옳다고 하면 그것이 옳은 것이다. 당신이 옳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 줄 것이며, 내가 당신을 믿었던 것에 대한 결과는 그 때 판가름 날 것이다.'
너무나도 소름끼치는 대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있는 참견 없는 참견 다하고, 서로 맞다 틀리다 라고 핏대 높여 싸우는 한국식 프로젝트 진행보다는 마음은 편한 듯 싶다. 끝까지 우겨서 구축해 놓은 후 잘못되면 네 탓, 잘 되면 내 탓..운운하는 것 보다는 말이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당신은 테니스 좀 쳐 보셨습니까?
초보자들끼리 치면 스매싱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공을 높이 띄우기만 하기 때문에 서로 치기가 편합니다.
초보자와 프로가 치며 스매싱 같은 것은 없습니다. 초보자가 받아치기 쉽도록 프로는 공을 띄워 줍니다.
어중간한 사람끼리 테니스를 치면, 불규칙한 공들이 날아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스매싱 덕분에 네트에 걸리기 일쑤 입니다. 너무 강하게 치는 바람에 라인을 넘어가기 일쑤 입니다. 두번 세번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경기 진행이 되지 않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것이죠.